[사연을 담다] 최태명 장로 – 생각을 바꾸면

 

 

그때가 스물셋 넷 정도 됐을 거예요. 지금 53세니까 30년 정도 됐네요. 그때는 운동권이라고 하는 그런 데에 가서 학습 교육도 좀 받고, 그러면서 막 데모하는데 돌도 한번 던져보고 뭐 그러던 시기였어요. 뭣도 모르고 그런 데 뛰어들었죠.

그때 또 집에 우환이 생겼어요. 어머님 굉장히 아프셨고 이러다 보니까 집안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해결하지 못하니까 굉장히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이제 말씀을 듣기 시작했던 거에요. 처음 말씀을 처음 들으니까 너무 굉장히 말씀이 신선했고 굉장히 획기적이었어요. 제가 군대 가기 전에는 빨리 나라를 뒤집어서 이 어떤 잘못된 세상을 뒤집자 그렇게 하면서 나를 바꾸려고 어떤 그런 생각으로 운동권 학습을 배웠는데 우리가 말씀을 듣고 환경이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의 생각이 바뀌어야 이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그때 깨달은 거예요.

그러면서 이 말씀의 어떤 위대성 그걸 체험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영적인 체험도 해나가고 내가 정말 바라고 원했던 집안의 문제도 해결하게 되니까 그때부터 신앙이 자라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말씀을 자꾸 듣다 보니까 나에 대한 잘못이 눈에 보이는 거예요.
내가 잘못돼있구나, 그것을 깨닫게 됐어요. 내가 먼저 막 혈기 부리고 했던 친구한테 찾아가서..

내가 말씀을 자꾸 듣다 보니까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부족함을 깨달았다. 당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내가 거치니까, 내가 거친 성격이 있으니까 자꾸 이렇게 부딪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나 자신을 비춰봐서 나의 잘못을 깨닫고, 그래서 내가 회개한다. 미안하다.잘못했으니까 앞으로 날 잘 이끌어주고 잘 가르쳐주고 잘 키워달라.”

그렇게 하니까 상대방도 오히려 더 미안해하더라고요 상대방이….

내가 막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더라고요.

나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상대한테 진정한 용서를 구했을 때 나의 정신 영이 성장해 나간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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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을 담다] 석막리 교회의 십자가 하선국씨

 

저는 석막리 115번지에서 출생했어요. 그리고 1939년 1월 27일이 (음력으로) 태어난 날이에요. 정인석 씨 (정명석 총재의 첫째 형)하고는 중학교 때, 이희동 목사하고 나하고 3총사 형제로서 잘 지내는 그런 찰나였어요.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를 대전으로 나가게 됐어요.

그래서 내가 사진을 하나 찍어줘야 되겠다. 마음을 먹고 연락을 했더니 그날이 토요일인가 됐을 건데, 카메라를 메고 내가 이제 인석이 집으로 갔어요. 갔더니 가족들이 전부 보리타작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 왔다고, 이제 고등학교 가면 못 오니까 오늘 바로 찍자고 인석이한테 얘기했어요. 얘기했더니 막 세수들을 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이 인석이 방 앞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그렇게 진학 과정을 밟기 전에 그걸 찍어서 해드리고 그렇게 하고 간 거예요.

 

 

내가 군대를 다녀와서도 진산에 사진관을 차렸었어요. 한번은 밖에 나와 보니까 누가 차에서 뭘 내리더니 뭔가를 이렇게 끌고 오더라고. 보니깐 정명석 목사예요.

“그게 뭐냐?”

“형님! 지금 금산에 가서 십자가를 맞춰 갖고 왔어요.”

그 십자가를 (석막)교회 위에 설치해야 하잖아요. 진산에서는 못 만드니까 금산 가서 맞춰서 그것을 차에서 내렸어요. 내렸는데 십자가가 길잖아요. 그런데 정명석 목사 키가 작으니까 십자가를 짊어지고서 ‘들덕들덕들덕….’ 하면서 석막교회 쪽으로 넘어간 거예요.

정명석 목사가 새로 만들어 온 그 십자가를 메고 석막리 가는 길로 넘어갔다니까요. 금산에서 그걸 맞춰 와서… 앞섭골로 넘어간 거예요. 그렇게 월명동 사람들이 석막 교회를 힘들여서 지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은 거예요.

하여튼 내가 지금 생각나는 것은 정명석 목사가 그 십자가를 지고서 넘어갔을 때 십자가가 자기 몸보다 크니까 이것을 메고서 ‘들덕들덕….’ 키가 작으니까 그 고생을 하면서 넘어가는 것이 지금도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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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을 담다] 정명석 선생님(반사)의 가르침 장재완씨

훌륭한 교사이며 교회의 지도자 정명석 목사님

석막리에서 태어나 7살 때 주일학교에 입교했습니다. 정명석 선생님, 그때 당시에는 석막교회 반사, 선생님이셨어요. 농사 일도 바쁘시고, 교회 일도 많은신데 저희를 일일이 찾아서 한사람 한사람 손잡고 아주 정겹게 교회가서 말씀 가르쳐 주셨어요.
또 야외에서도 정명석 목사님은 하나님 말씀을 저희들에게 많이 가르쳐 주시고,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정이 많고 다정한 모습으로 항상 모범을 보이신 훌륭한 교사이며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법 없이도 살 분이라고..

저희는 그때 어리기 때문에 천진난만했어요. 막 그냥 개구쟁이니까… 정명석 목사님의 옷도 잡고, 손도 잡고, 앞에 가서 길도 막고 막고 했어요.

정명석 목사님은 짜증을 내고 화를 낼 만한 상황인데도, 오히려 웃음으로 너그럽게 주일학생들을 살펴주셨어요. 그리고 아주 천진난만하고 해맑은, 얼굴이 어떤 악의적인 것이 전혀 없는, 법 없이도 살 분이라고 주민들의 칭송이 대단했습니다.

 

가장 가치있는 삶,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

한번은 정명석 목사님이 아이들의 손목에 손수건을 매달아서 콧물을 닦을 수 있게 해주신 적이 있어요. 그 당시에 손수건이 귀한데 어떻게 구하셨는지, 매달아 주셨어요. 손수건으로 콧물 닦는 방법, 어떻게 하는 방법과 머리 감는 방법, 발 닦는 방법, 옷입는 방법 등 일상적인 것들을 가르쳐주시는 굉장히 정이 많으셨던 분이라고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명석 목사님은 성경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어요.

“이제 앞으로 너희들이 세상에 나가보면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가고 또 사회생활을 하면 크게 원대한 꿈을 가지고 희망을 가지고 또 항상 책을 가까이하면서 자기 발전을 위해서 열심히 해야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 말씀을 가장 최고로 가치있게 생각하고 모든 주변 사람들하고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그런 사람이 세상에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공무원도 될 수 있고 나아가서 다양한 방법으로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을 꼭 모시고 사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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